
사진출처:IMDb
「가버나움」은 감동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관객을 위로하지 않는다. 오히려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고, 끝까지 죄책감을 붙잡는다.
이 작품은 한 소년이 부모를 고소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나를 낳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충격적이지만, 영화는 그 말을 극단적인 대사로 소비하지 않는다. 영화는 그 말이 왜 나오게 되었는지를 하나씩 보여준다.
주인공 자인은 아이지만, 이미 아이가 아니다.
그는 동생들을 돌보고, 돈을 벌고, 거리에서 살아남는다.
그가 살아가는 세상은 아이를 보호하지 않는다.
아이를 이용하고, 버리고, 잊어버린다.
「가버나움」은 말한다.
아이들이 불행한 이유는 운이 나빠서가 아니다.
아이들이 불행한 이유는 어른들이 책임을 버렸기 때문이다.
줄거리
레바논 빈민가에서 사는 소년 자인은 법정에 서 있다. 그는 자신의 부모를 고소한다. “왜 나를 낳았냐”고 묻는다.
영화는 자인이 법정에 서게 된 이유를 과거로 돌아가 보여준다.
자인은 가난한 집에서 여러 형제들과 함께 산다. 부모는 생계에 쫓기며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못하고, 거리에서 일을 하며 살아간다.
자인이 가장 아끼는 동생 사하르는 아직 어린 소녀다. 그런데 부모는 사하르를 돈과 맞바꾸듯 결혼시키려 한다. 자인은 그것을 막으려 하지만 실패한다.
사하르는 결국 집을 떠나고, 자인은 분노하며 집을 나온다.
거리로 나온 자인은 우연히 불법 체류자 여성 라힐을 만나게 된다. 라힐은 갓난아기 요나스를 키우고 있다. 자인은 라힐과 함께 지내며 요나스를 돌보게 된다.
그러나 라힐이 체포되면서 자인은 갓난아기와 함께 홀로 남는다.
자인은 아기를 살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인다.
하지만 아이가 아이를 돌보는 상황은 너무 잔인하다.
결국 자인은 범죄에 휘말리고, 감옥에 들어가며, 법정에서 부모를 고소하는 현재로 이어진다.
등장인물
1) 자인
아이지만, 아이로 살 수 없는 소년이다. 분노와 책임감 사이에서 살아남는다.
2) 라힐
불법 체류자 여성이다. 사회의 가장 아래에서 살아가며, 자인에게 잠시 가족 같은 공간을 만든다.
3) 요나스
라힐의 아기다. 이 영화에서 가장 약한 존재이자, 가장 강하게 관객을 흔드는 존재다.
4) 자인의 부모
악인이라기보다 무책임한 어른들이다. 그들의 무책임이 자인을 파괴한다.
[방치]
「가버나움」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방치다.
이 영화 속 아이들은 보호받지 못한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못한다.
아이들은 거리에서 일을 한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욕망에 의해 팔리고, 결혼하고, 버려진다.
방치는 단순히 “돌보지 않는 것”이 아니다.
방치는 아이에게 “너는 중요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다.
자인이 동생을 지키려 애쓰는 이유는, 부모가 지켜주지 않기 때문이다.
자인이 거리로 나가는 이유도, 집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말한다.
아이들이 가장 불행한 이유는 가난 때문이 아니라, 방치 때문이라고.
가난은 어려움이다.
하지만 방치는 폭력이다.
[분노]
자인의 감정은 슬픔보다 분노에 가깝다.
이 영화에서 분노는 폭발이 아니라 생존 방식이다.
자인은 계속 화가 나 있다.
부모에게 화가 나 있고, 사회에게 화가 나 있고, 어른들에게 화가 나 있다.
그 분노는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자인은 너무 많은 것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그는 어린 시절을 빼앗겼다.
그는 학교를 빼앗겼다.
그는 동생을 빼앗겼다.
그는 인간답게 살 권리를 빼앗겼다.
그래서 자인의 분노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분노는 “나를 지워버리지 말라”는 외침이다.
이 영화는 분노를 나쁜 것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분노는 때로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힘이 된다.
[존엄]
이 영화의 핵심은 존엄이다.
자인은 끝까지 “나는 인간이다”를 포기하지 않는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자인이 갓난아기 요나스를 돌보는 장면들이다.
자인은 너무 가난하고, 너무 어린데도, 아기를 버리지 않는다.
그는 밥을 먹이려고 애쓰고,
아기가 울면 달래고,
아기를 살리기 위해 거리에서 뛰어다닌다.
이 장면들은 감동적이지만 동시에 너무 잔인하다.
왜냐하면 그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자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인은 그 상황 속에서도 존엄을 지키려 한다.
그는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말한다.
존엄은 돈이 있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존엄은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을 인간으로 보려는 태도에서 나온다.
느낀점
「가버나움」은 너무 현실적이라서 힘든 영화다.
이 영화는 관객을 울리기 위해 억지 장치를 쓰지 않는다.
현실 자체가 이미 충분히 잔인하기 때문이다.
자인의 얼굴은 영화 내내 관객을 흔든다.
그 얼굴에는 슬픔과 분노와 포기가 동시에 담겨 있다.
그리고 관객은 계속 묻게 된다.
“이 아이는 왜 이렇게까지 살아야 했나.”
마무리
「가버나움」은 불쌍한 아이의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방치가 어떻게 인간을 파괴하는지 보여주는 영화다.
방치는 아이를 지운다.
분노는 아이가 살아남는 방식이 된다.
존엄은 그 속에서도 끝까지 붙잡아야 하는 마지막 가치가 된다.
이 영화가 마지막에 남기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아이를 낳는 것은 권리가 아니다.
아이를 책임지는 것이 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