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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버나움) 아이가 세상에 던진 가장 잔인한 질문

by 제이마더 2026. 1. 20.

사진출처:IMDb

 

개봉연도: 2018년
감독: 나딘 라바키
대표 수상: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

 

레바논 빈민가의 한 소년이 법정에서 부모를 고소한다. 이유는 단 하나, “나를 낳았기 때문이다.”
영화 「가버나움」은 이 충격적인 설정으로 시작해,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출생’과 ‘부모됨’의 의미를 정면으로 흔든다.

이 작품은 가난, 난민, 아동 노동이라는 사회 문제를 넘어, 아이에게 삶을 주는 행위가 과연 무조건적인 축복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화려한 연출도, 감정을 강요하는 음악도 없이, 그저 아이의 얼굴과 거리의 현실만으로 관객을 끝까지 몰아붙인다.


🔹이 영화가 말하는 핵심 메시지

「가버나움」의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단순하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출생이 아니라 책임이라는 것이다.

주인공 자인은 태어나자마자 선택권 없는 삶을 강요받는다. 학교 대신 거리에서 일하고, 병원 대신 시장에서 잠을 자며, 보호 대신 폭력과 방치를 배운다. 부모는 아이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그 사랑은 생존을 보장하지 않는다.

영화는 부모의 악의보다 무능과 무책임을 더 무섭게 묘사한다. 먹일 능력도, 보호할 환경도 없으면서 계속 아이를 낳는 어른들. 자인은 그 구조 속에서 조용히 소모되는 존재일 뿐이다.

그래서 법정에서 자인이 던지는 말은 단순한 분노가 아니라 사회 전체를 향한 고발이다.

“왜 나를 태어나게 했어요?”

이 질문은 부모에게만 향하지 않는다. 빈곤을 방치한 사회, 난민을 외면한 국가, 아이의 고통을 구경거리처럼 소비하는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영화는 출생을 축복이 아니라 책임의 시작으로 정의한다. 아이는 태어난 순간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있으며, 그 권리를 지켜주지 못한다면 출산은 선택이 아니라 폭력이 될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보여준다.


🔹왜 이 작품이 높이 평가되었는가

「가버나움」이 전 세계 영화제에서 극찬을 받은 이유는 메시지 때문만은 아니다. 이 영화는 거의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방식으로 현실을 포착한다.

주인공 자인을 연기한 자인 알 라피아는 실제로 난민 출신의 소년이며, 극 중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다. 그의 눈빛과 표정에는 연기가 아닌 경험이 담겨 있다.

카메라는 연민을 강요하지 않는다. 울음을 확대하지도, 음악으로 감정을 부풀리지도 않는다. 대신 아이가 걷는 거리, 더러운 집, 시장의 소음, 경찰서의 차가운 바닥을 묵묵히 따라간다.

이 절제된 연출 덕분에 관객은 동정이 아니라 불편함과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누군가의 불행을 안전한 좌석에서 소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는 순간, 영화는 이미 성공한 셈이다.

또한 영화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단순히 구분하지 않는다. 부모 역시 가난의 피해자이며, 시스템의 희생자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렇다고 책임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이 복잡한 구조를 흑백논리 없이 담아낸 점이 작품의 깊이를 만든다.

그래서 「가버나움」은 ‘불쌍한 아이 이야기’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실패를 기록한 보고서처럼 느껴진다.


🔹현실과 연결되는 해석

이 영화가 더 잔인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이것이 특정 국가의 특수한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동 학대, 방임, 빈곤 가정, 보호 사각지대는 형태만 다를 뿐 어디에나 존재한다. 뉴스에서 잠깐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아이들의 얼굴은 자인의 또 다른 모습일 수 있다.

우리는 흔히 “부모도 힘들었을 것이다”라는 말로 상황을 이해하려 한다. 물론 그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는 묻는다.

어른의 사정이 아이의 고통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삶을 살아내야 하는 아이에게, 환경은 곧 운명이다. 교육도, 의료도,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성장한 아이가 다시 가난한 어른이 되고, 또 아이를 낳는 구조는 끊임없이 반복된다.

「가버나움」은 이 악순환을 멈추기 위해 감정이 아닌 책임을 요구한다. 동정이 아니라 제도, 기부가 아니라 정책, 눈물이 아니라 행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개인에게도 질문을 던진다.
아이를 원한다는 말이 정말로 아이의 삶 전체를 책임질 준비가 되었다는 뜻인지, 아니면 단지 어른의 외로움을 채우기 위한 욕망은 아닌지 말이다.


🔹마무리

「가버나움」은 보고 나면 쉽게 잊히지 않는 영화다. 눈물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던져진 질문이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이에게 삶을 주었다고 말하지만, 그 삶이 고통이라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이 영화는 말한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태어남이 아니라, 지켜질 권리라고.

그리고 그 권리를 지키지 못하는 사회라면, 그 사회는 이미 법정에 서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가버나움」은 영화가 아니라 증언이다. 침묵당한 아이들이 대신 말하는, 아주 작은 목소리의 고발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