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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용서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by 제이마더 2026. 1. 18.

사진출처: IMDb

 

개봉연도: 2007년
감독: 이창동
대표 수상: 제60회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전도연)

 

사람은 극단적인 고통 앞에서 무엇을 붙잡고 살아가게 될까. 믿음일까, 분노일까, 아니면 용서일까. 영화 밀양은 이 질문을 끝까지 밀어붙이며, 관객에게 쉽게 대답할 수 없는 감정을 남긴다.

이 영화는 위로를 주는 작품이 아니다. 오히려 위로가 얼마나 무력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주인공 신애는 남편을 잃고, 아들과 함께 밀양이라는 낯선 도시로 내려온다. 그곳에서 그녀는 또 다른 상실을 겪고, 인생의 바닥을 통과하게 된다. 그리고 그 이후의 이야기는 단순한 비극이 아니라, 인간의 신념과 존엄이 어떻게 흔들리는지를 조용히 기록한다.


🔹 이 영화가 말하는 핵심 메시지: 용서는 선택이 아니라 폭력이 될 수도 있다

신애는 아이를 잃은 뒤, 신앙에 기대어 살아가려 한다. 고통을 견디기 위해 선택한 방식이다. 교회 사람들의 친절, 기도, 위로의 말들은 그녀에게 잠시 숨을 쉴 공간을 만들어준다. 그녀는 말한다. “하나님이 용서하셨다”고.

그리고 아이를 죽인 범인을 찾아가, 자신도 용서하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순간, 가해자는 뜻밖의 말을 한다. 이미 하나님께 용서받았고, 마음이 평안하다고.

이 장면에서 영화는 방향을 바꾼다. 용서가 구원이 아니라, 또 다른 상처가 되는 순간이다. 신애에게 용서는 고통을 넘어가기 위한 마지막 선택이었지만, 가해자의 평온한 태도는 그 선택을 무너뜨린다. 피해자의 고통은 여전히 진행 중인데, 가해자는 이미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는 사실이 그녀를 다시 바닥으로 떨어뜨린다.

이때 영화는 묻는다.

용서는 과연 누구를 위한 행위인가?

신애의 분노는 이해받지 못하고, 그녀의 절망은 종교적 언어 속에서 묻혀버린다. 밀양은 용서가 언제나 숭고한 선택은 아니며, 때로는 피해자에게 또 하나의 강요가 될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드러낸다.


🔹 왜 이 작품이 높이 평가되었는가

밀양이 오래도록 회자되는 이유는 감정의 진폭을 자극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감정을 절제하며, 인간의 내면을 끝까지 관찰하기 때문이다.

첫째, 전도연의 연기다.
그녀는 울부짖는 장면보다, 무너져 내리는 침묵을 더 많이 보여준다. 기쁨, 분노, 절망, 자존심, 체념이 얼굴의 작은 변화로 전달된다.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이유가 명확하다.

둘째, 연출의 태도다.
영화는 신애를 판단하지 않는다. 그녀가 신을 믿든, 증오하든, 무너지든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보여줄 뿐이다. 그래서 관객은 그녀의 선택을 비판하기보다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셋째, 종교를 다루는 방식이다.
이 영화는 신앙을 부정하지도, 찬양하지도 않는다. 다만 인간이 얼마나 절박한 순간에 믿음을 붙잡게 되는지를 현실적으로 그린다. 그 믿음이 사람을 살릴 수도, 더 깊이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이런 태도는 상업 영화에서 보기 드물다. 그래서 밀양은 불편하지만, 쉽게 잊히지 않는다.


🔹 현실과 연결되는 해석: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현실에서도 우리는 자주 말한다.

“이제 잊어라.”
“용서하는 게 너를 위해서다.”
“언젠가는 괜찮아질 거다.”

하지만 고통에는 속도가 없다. 누군가는 하루 만에 일어설 수 있고, 누군가는 평생 그 자리에 머물 수도 있다. 영화 속 신애처럼, 겉으로는 회복된 것처럼 보여도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무너지고 있을 수 있다.

밀양은 피해자가 “강해져야 할 의무”를 지고 살아가는 사회를 조용히 비판한다. 고통을 겪은 사람에게조차 품위와 인내를 요구하고, 분노조차 정리되길 바라는 시선 말이다.

이 영화가 불편한 이유는, 우리 역시 누군가의 고통 앞에서 쉽게 위로하고 쉽게 정리하려 했던 사람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신애의 붕괴는 개인의 약함이 아니라, 감당할 수 없는 상실 앞에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인간적인 반응이다.


🔹마무리

밀양은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질문을 남긴다.

용서는 정말로 구원일까.
신은 고통받는 사람의 편일까.
우리는 타인의 상처를 끝까지 바라볼 준비가 되어 있을까.

이 영화는 관객을 편하게 놓아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서 더 진실에 가깝다. 신애가 끝내 웃지 못하고, 명확한 결론에 도달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실의 고통은 영화처럼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기 때문이다.

밀양은 말하지 않는다. 대신 보여준다. 인간이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 그리고 그 약함 속에서도 존엄을 지키려 애쓰는 모습이 얼마나 처절한지를.

그 침묵이 오래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