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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드: 선택은 결국 나를 만든다(자유,우정,편견)

by 제이마더 2026.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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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IMDb

 

뮤지컬 영화는 원래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노래가 갑자기 시작되면 몰입이 깨진다고 느끼는 사람도 많고, 이미 너무 유명한 원작이 있으면 기대치가 높아져 오히려 실망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키드>는 그런 걱정을 조금씩 지워가는 영화였다.

 

화려한 판타지와 익숙한 오즈의 세계를 가져오면서도, 결국 이 영화가 가장 오래 남기는 것은 거대한 스케일이 아니라 한 사람을 ‘악한 존재’로 규정해버리는 사회의 시선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유명한 뮤지컬 원작 영화라고 생각하고 보기 시작했는데, 보고 나니 내 마음에 남은 건 노래보다도 ‘왜 어떤 사람은 처음부터 미움받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이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자연스럽게 자유, 우정, 편견이라는 세 가지 단어로 정리되었다.

 

2024년 개봉한 미국 영화 <위키드>는 존 M. 추 감독이 연출했고, 신시아 에리보와 아리아나 그란데가 중심을 이끈다. 미국에서는 2024년 11월 22일 개봉했고, 브로드웨이 원작을 2부작으로 나눈 첫 번째 영화다.


[줄거리]

영화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고 믿었던 오즈의 세계를 다른 각도에서 보여준다.

모두가 ‘착한 마녀’로 기억하는 글린다와, ‘서쪽의 사악한 마녀’로 알려진 엘파바가 사실은 어떻게 만나고, 왜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는지를 따라간다.

초록 피부를 가진 엘파바는 태어날 때부터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불편한 시선을 받는다. 반면 글린다는 아름답고 인기 많고, 사람들의 기대를 자연스럽게 받는 인물이다. 두 사람은 쉬즈 대학에서 만나 처음에는 충돌하지만, 함께 시간을 보내며 예상치 못한 관계를 만들어간다.

이후 엘파바는 자신이 믿었던 권위와 질서가 결코 정의롭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세상이 말하는 ‘옳음’과 자신의 양심 사이에서 중요한 선택을 하게 된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던 ‘악한 마녀’의 시작은 사실 누군가를 해치려는 욕망이 아니라, 거짓된 체제에 순응하지 않으려는 저항에서 출발한다.


[등장인물]

엘파바는 이 영화의 중심이다. 겉으로는 강하고 냉정해 보이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인정받고 싶고 상처받기 쉬운 인물이다. 그녀는 단순한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세상이 만들어낸 낙인을 온몸으로 버텨내는 존재다.

글린다는 처음에는 가볍고 허영심 많은 인물처럼 보이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 안에 있는 불안과 흔들림이 드러난다. 모두에게 사랑받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랑받는 모습’을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 사는 인물이다.

이 둘의 관계가 중요한 이유는, 이 영화가 결국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세상에 적응하는 두 사람의 성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키드〉는 판타지이면서도 놀라울 정도로 현실적인 감정이 있다.


이 영화가 말하는 세 가지 주제

[자유]

〈위키드〉가 가장 강하게 말하는 첫 번째 주제는 자유다.
그리고 이 자유는 단순히 “내 마음대로 살겠다”는 가벼운 의미가 아니다. 이 영화에서 자유는 세상이 정해준 역할을 거부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가깝다.

엘파바는 태어날 때부터 ‘정상’의 범주 밖에 있다. 그녀는 특별한 힘을 가졌지만, 그 힘은 축복이 아니라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사람들은 그녀를 이해하기보다 먼저 불편해하고, 경계하고, 규정한다. 그러니 엘파바가 원하는 자유는 단순히 공간의 자유가 아니라, 타인의 해석 없이 존재할 자유다.

이 지점이 참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실제 삶에서도 누군가를 자주 겉모습, 말투, 성격, 배경으로 먼저 판단한다. 그리고 그 사람이 스스로를 설명하기 전에 이미 이미지를 만들어버린다. 엘파바가 겪는 고립은 판타지 속 마녀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에서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주변과 어긋나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다.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엘파바는 ‘좋은 평가를 받는 삶’보다 ‘내가 옳다고 믿는 방향’을 선택한다. 그 순간부터 그녀는 사회가 주는 안전을 잃는다. 하지만 대신 자기 자신을 얻는다. 나는 이 장면들이 단순히 멋있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현실에서 그런 선택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사람은 인정받고 싶고, 미움받기 싫고, 틀린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다.

그런데도 〈위키드〉는 말한다.
자유는 편안함의 반대편에 있을 때가 많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결국, 사랑받기 위해 사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산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엘파바가 더 이상 ‘사악한 마녀’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큰 대가를 치르면서도 스스로의 선택을 붙드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래서 〈위키드〉의 자유는 화려한 판타지의 장식이 아니라, 이 영화를 가장 깊게 만드는 감정이다.


[우정]

처음 〈위키드〉를 보기 전에는 솔직히 이 영화를 ‘엘파바의 서사’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이 영화를 끝까지 끌고 가는 감정의 중심은 오히려 엘파바와 글린다의 우정이었다.

두 사람은 너무 다르다. 엘파바는 늘 방어적이고, 글린다는 처음부터 사랑받는 법을 아는 사람이다. 한 사람은 늘 주변을 경계하고, 다른 한 사람은 주변의 시선을 활용한다. 그래서 처음엔 절대 친해질 수 없을 것 같은 조합처럼 보인다.

하지만 영화는 그 차이를 갈등으로만 소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차이 덕분에 두 사람은 서로를 비춰보게 된다. 글린다는 엘파바를 통해 처음으로 자신이 얼마나 타인의 시선에 맞춰 살아왔는지 깨닫고, 엘파바는 글린다를 통해 세상 속에서 부드럽게 살아남는 방식도 있다는 걸 보게 된다.

나는 이 관계가 참 좋았다. 왜냐하면 진짜 우정은 늘 비슷한 사람끼리만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내가 없는 것을 가진 사람,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방식을 가진 사람과 가까워질 때 더 크게 흔들린다. 그리고 그 흔들림 속에서 사람은 조금씩 넓어진다.

〈위키드〉 속 우정은 단순히 다정하고 예쁜 관계가 아니다. 이 우정은 서로를 변화시키고, 동시에 서로를 더 아프게도 만든다. 특히 두 사람이 각자의 길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올수록, 이 관계는 더 아름답고 더 슬퍼진다. 같은 마음이 있어도 같은 선택을 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 너무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우정은 로맨스보다 더 강하게 남는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종종 감정의 문제지만, 누군가를 끝까지 이해하려는 건 태도의 문제다. 글린다와 엘파바는 완전히 같은 사람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서로를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그 점이 이 영화를 단순한 성장 판타지가 아니라, 관계에 대한 영화로 보이게 만든다.

결국 〈위키드〉는 묻는다.
나와 너무 다른 사람을, 나는 끝까지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이야말로 이 영화가 오래 남는 이유 중 하나다.


[편견]

〈위키드〉를 관통하는 가장 날카로운 주제는 편견이다.
사실 이 영화가 왜 많은 사람들에게 단순한 뮤지컬 이상의 울림을 주는지 생각해보면, 결국 이 지점 때문이라고 느꼈다.

엘파바는 처음부터 ‘다르게 생긴 존재’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사람들은 이미 그녀를 불편해한다.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도 전에, 초록 피부라는 외형 하나만으로 거리감을 만든다. 여기서 영화는 아주 단순하지만 무서운 진실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사실을 보기 전에 이미 결론부터 내릴 때가 많다.

더 무서운 건, 편견은 개인의 감정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 속에서 편견은 점점 제도와 권력, 여론과 이미지의 문제로 확장된다. 누군가를 ‘이상한 존재’로 규정하고, 그 규정을 반복하고, 많은 사람이 그 이야기를 믿게 만들면, 결국 진실보다 이미지가 더 강해진다.

이건 지금 현실과도 너무 닮아 있다. 요즘도 사람 하나를 평가할 때, 직접 본 사실보다 남이 만들어놓은 이미지가 더 빨리 퍼진다. 누군가를 ‘문제 있는 사람’, ‘위험한 사람’, ‘이상한 사람’으로 규정하면, 그 뒤에는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해도 해명이 늦는다. 엘파바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그래서 〈위키드〉는 단순히 “편견은 나쁘다”라고 말하는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편견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유지되고, 어떻게 권력의 도구가 되는지를 보여준다. 그게 무섭고, 동시에 이 영화를 더 깊게 만든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악한 마녀”라는 말 자체가 이미 누군가의 프레임일 수 있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이야기의 결과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위키드〉는 그 결과 앞에 있었던 수많은 오해와 낙인, 선택의 순간을 보여준다. 그 순간부터 이 영화는 단순한 프리퀄이 아니라, ‘역사는 누가 쓰는가’에 대한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결국 편견은 진실을 가리는 가장 쉬운 도구다.
그리고 〈위키드〉는 그 도구에 맞서려는 한 사람의 시작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오즈의 마녀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누군가를 얼마나 쉽게 단정하는지 돌아보게 된다.


[느낀점]

〈위키드〉는 솔직히 생각보다 훨씬 더 좋았다.
처음에는 화려한 뮤지컬 판타지 정도로 기대했는데, 보고 나니 마음에 남는 건 세트나 의상보다도 엘파바가 세상 속에서 버텨내는 방식이었다.

특히 이 영화가 좋았던 이유는, 우리가 너무 익숙하게 알고 있던 ‘착한 사람 / 나쁜 사람’의 구도를 아주 자연스럽게 흔들어버린다는 점이다. 누군가를 악인으로 기억하기 전에, 그 사람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한 번쯤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글린다와 엘파바의 관계가 좋았다.
같은 마음이 있어도 같은 길을 걷지 못하는 관계는 늘 오래 남는다.
이 영화는 바로 그 씁쓸함을 아주 예쁘고도 아프게 보여준다.

뮤지컬 영화라서 부담스러울까 걱정했던 사람도, 의외로 감정선에 먼저 빠질 수 있는 영화라고 느꼈다.


[마무리]

〈위키드〉는 ‘사악한 마녀’의 탄생을 그린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이 영화는, 세상이 누군가를 얼마나 쉽게 오해하고 얼마나 빠르게 낙인찍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엘파바를 다르게 보게 된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 현실에서 ‘이상하다’고 불렸던 사람들에 대해서도 조금은 다른 마음을 갖게 된다.

결국 〈위키드〉는 자유를 선택한 한 사람의 이야기이고, 우정을 통해 흔들린 두 사람의 이야기이며, 편견이 진실을 어떻게 덮는지 보여주는 영화다.
화려한 판타지와 음악 뒤에 이렇게 묵직한 질문이 숨어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생각보다 훨씬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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